가을은 흔히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번 주는 단순한 계절 소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인 주거 문제와 관련된 큰 변화가 발표되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주택공급 대책은 숫자만으로도 크지만, 무엇보다 기존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번 내용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 전략으로
올해 6월, 정부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수요 억제 중심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억제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9월 7일 발표된 새로운 정책은 ‘공급 확대’라는 뚜렷한 전환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수도권에서 총 135만 가구(연평균 27만 가구)를 실제 착공 기준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인허가 수치’가 아니라 ‘착공 수치’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인허가는 말 그대로 허가에 그치고 실제 공사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착공은 통상 3~6개월 내 분양으로 연결되는 만큼 체감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 관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장에 공급 물량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2. LH, 땅을 팔던 기관에서 직접 개발 주체로
이번 대책의 중심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있습니다. 그동안 LH는 농지나 임야를 매입해 기반시설을 조성한 뒤, 민간 건설사에 토지를 판매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시세 차익을 얻었지만, 정작 주택 공급 속도를 좌우하는 역할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땅장사’라는 비판이 따라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LH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는 택지 매각을 전면 중단하고, LH가 직접 개발 사업을 추진합니다. 민간은 설계·시공과 자금 조달을 맡되, 사업의 주도권은 공공이 행사합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만 약 7만 5000가구를 LH가 직접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역세권이나 주요 지역에는 공공임대주택이 포함되는데, 이는 과거 경기도의 ‘기본주택’ 모델처럼 중산층까지 수용 가능한 임대주택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저소득층 대상이 아닌,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포괄적 임대주택’ 체계가 가동되는 셈입니다.
또한 LH는 장기간 미사용된 토지나 상업용 부지를 주거용으로 전환해 추가로 약 1만 5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의 협의를 원활히 하기 위해 개발이익의 일부를 지역에 재투자하겠다는 방침도 포함되었습니다.
3. 민간·제도·금융 전반을 아우르는 보완책
공급 확대라는 큰 틀 외에도 정부는 여러 보완 정책을 병행합니다.
-
민간 공급 촉진: 주택 건설사업 인허가 기간을 단축해 민간 부문에서의 공급 속도를 높입니다.
-
토지거래 관리 강화: 기존에는 시·도지사만 가능했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부 장관까지 확대했습니다. 시장이 불안정할 때 신속한 개입이 가능해집니다.
-
금융 규제 조정: 9월 8일부터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의 주택담보대출 LTV가 50%에서 40%로 강화됩니다. 또한 수도권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가 2억 원으로 일원화되어, 보증기관별 차이가 사라졌습니다.
-
시장 질서 확립: 국토부·금융위·국세청·경찰청·금감원 등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부동산 불법 거래와 범죄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해 관리·감독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보완책은 공급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고, 동시에 금융 건전성과 시장 신뢰를 지키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4. 남은 과제 – LH 재원 문제
다만, 이번 구조 변화에는 숙제도 남아 있습니다. LH는 지금까지 택지를 매각해 얻은 수익으로 임대주택 운영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매각이 중단되면 이러한 재원 조달 방식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개발이익 환수 체계를 강화하고, 필요할 경우 채권 발행이나 국고 지원을 통해 LH의 재무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LH 개혁위원회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즉, 공급 구조 전환 자체는 의미 있지만, 재무 안정성과 장기적 운영 가능성 확보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